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 [생명의 삶 큐티]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 신명기 24:14-22 #신명기 #큐티 #Qt #생명의삶 최근 답변 138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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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와 과부에 관한 성경구절 – 네이버 블로그

신 10:18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신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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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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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고아’와 ‘과부’ 돌보기 – 뉴스앤조이

입양한 크리스천 부모들은 입양을 하나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입양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입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주신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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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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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Lee – 성경에세이 영적 과부와 고아를 돌보아라! 여보게 …

성경에는 과부와 고아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네. 그 중 몇 말씀을 옮겨볼까?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슥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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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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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파워] “고아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신10:17~19)예수마을 선교 … 저는 그 후 한 평생 부모님을 떠난 고아와 나그네의 삶을 외롭게 살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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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power.co.kr

Date Published: 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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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에서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어떻게 돌보라고 했나요?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는 (또는 공의를 행하시는 혹은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신원한다는 말은 억울함을 풀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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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5/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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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4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두라 (신명기 24장 17 …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신 24:18)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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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pcgl.org

Date Published: 3/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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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1:27 KRV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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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1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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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성경 구절 하나님이 고아를 돌보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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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knowing-jesus.com

Date Published: 1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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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큐티]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 신명기 24:14-22 #신명기 #큐티 #QT #생명의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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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

  • Author: 서목사의 말씀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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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5.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fWKlIOBV2VA

고아와 과부에 관한 성경구절

신 10:18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신 14:29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거류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이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신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 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20-21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신 26:12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신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슥 7:10

(여호와의 말씀이)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겔 22:7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햐였도다

렘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시 146:9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시 68:5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시 10: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시 10: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악인)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를 가늠하려면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정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가장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고아와 과부 나그네에 대해서 이렇게 자상하게 배려하고, 여러 차례

목소리 높여 말씀하시는 신이 또 어디 있을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참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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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유난히 많았던 2014년이었다. 지난 3월 서울시 송파구 세 모녀가 마지막 집세를 준비해 둔 채 연탄불을 피워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한 후, 유사한 일들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의 사회적 안전망에는 구멍이 많았고, 교회는 이 구멍을 메우는 것이 교회의 몫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사: 세 모녀 죽음에 대한 설교를 들어 보니)

겨울은 없는 사람들에게 더욱 혹독한 계절이다. 12월에 들어서고 한파가 시작되면,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소비문화에 잠식된 듯한 연말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연말연초는 사람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특히 12월에는 성탄절이 있어 기독교인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시기다. 아기 예수가 낮고 낮은 말구유에 임해 온 인류의 희망이 된 것처럼, 교회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희망이 되어 주려고 한다.

위축된 국내 입양…”입양은 특별히 착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다”

▲ 한국입양홍보회와 같은 단체들은 국내 입양을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양 부모와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줄이는 일을 하고 있다. (한국입양홍보회 홈페이지 갈무리)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말씀은 신구약을 통틀어 성경의 저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다. 구약에서는 고아와 과부의 ‘편을 드는’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자주 등장하고, 야고보서는 온전한 경건을 이야기하면서 고아와 과부를 환란 중에 돌아보라고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버려진 아이와 여자는 사회에서 가장 약한 사람들이다.

몇몇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깊이 새기고 버려진 아이를 입양하기도 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입양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온다. 성경의 가르침도 그렇고,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 되었다는 말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입양 부모 중에는 크리스천 부부가 많다. 입양한 크리스천 부모들은 입양을 하나의 ‘사명’으로 생각한다. 입양을 준비하는 동안 ‘하나님이 입양이라는 방법을 통해 주신 아기’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린다.

크리스천 양해성 씨(가명·35)와 그의 아내 박승희 씨(가명·34)는 올해 입양을 결심했다. 불임 때문이 아니었다.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데 이렇게 젊은 부부가 아이를 입양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양 씨는 결혼 전 노숙인 봉사 단체에서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을 도우면서 우리 사회에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해 고찰하게 됐다. 결혼 후 첫째는 직접 낳으려고 했지만, 올해 초 해외로 입양된 한국 사람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더 이상 입양을 미루면 안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고아와 과부를 돌보라’는 성경 말씀이 가슴 깊이 다가왔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부는 많은 기도를 올렸다.

이처럼 입양은 성경적으로도 ‘권장’되는 일이었다. 입양은 ‘선한 일’로, 입양을 선택하는 부모는 ‘선한 사람’으로 인식됐다. 정확히 말하면, 입양 부모 스스로 선하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입양 부모를 선하다고 치켜세웠다. 아이를 학대하거나 인신매매하는 등 범죄 영화에 나올 법한 일들이 가끔 현실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건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다. 버려진 아이들을 데려와 그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주는 것보다 숭고한 일은 찾기 힘들다.

하지만 정작 입양 부모들은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한다. 이들은 “입양은 단지 가정이 구성되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입양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다. 입양된 아이들도 다른 평범한 아이와 똑같다”는 의식을 퍼뜨리려고 한다. 홀트아동복지회를 비롯한 여러 입양 기관들과 한국입양홍보회, 한국입양가족협의회 등은 입양 부모와 입양아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으려 노력하고 있다. 특별한 사람만 입양하는 게 아니라, 누구나 입양할 수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 국내외 입양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정부가 2007년부터 해외 입양 쿼터제를 실시해 국외 입양이 줄었고, 국내 입양도 2011년 이후로 큰 폭으로 줄었다. (자료 제공 통계청)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아이를 입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입양 아동 수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1300~1400명 선을 유지해 왔고 2011년에는 1548명까지 뛰었다. 그러나 2012년에는 1125명으로 줄었고, 지난해에는 686명으로 급감했다. 반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요보호아동)은 매해 6000~8000명씩 나온다. 물론 아직까지 비공개 입양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입양 통계는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요보호아동 수에 비해 입양 수는 너무 적다. 이들은 아이들이 시설에서 자라는 것보다 새로운 가정에서 자라는 게 더욱 행복하다고 믿고 있다.

한국교회는 입양에 적극적인 편이다. 사랑의교회·안산동산교회·호산나교회 등 많은 대형 교회들이 입양을 권장하고 입양 부모들을 장려하고 있다. 이런 교회들에는 입양 부모들이 모이는 ‘입양부’가 따로 있다. 5월 11일 ‘입양의날’을 전후로 입양 주일을 설정해 입양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베이비박스’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아이가 위험한 곳에 유기되어 생명을 잃지 않도록 안전한 장소를 제공한 것이다. 9명의 아이들을 입양해 키우고 있는 이 목사는 “베이비박스에 버려지는 아기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2년 전만 해도 한 달에 2~3명이었는데, 지금은 한 달에 25~30명씩 유기된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표적인 크리스천 연예인 부부 차인표·신애라 씨가 딸 두 명을 입양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도 신선한 충격이었다. 신애라 씨는 지난 7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입양한 아이들도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일상을 소개했다. 이런 노력들로, 입양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고, 입양아도 그냥 아이일 뿐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

▲ 크리스천 연예인 신애라 씨는 두 딸을 입양했다. 그는 지난 7월 방송된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입양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SBS 힐링캠프 갈무리)

새 가족과의 만남은 원가족과의 이별…응급처치에 가려진 ‘제도 개선’

▲ 뿌리의집은 입양의 그늘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올해에는 해외 입양의 문제점을 고발하는 <구원과 밀매>라는 책을 펴냈다.

출산과 마찬가지로 입양을 통해 가족의 일원이 생긴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다. 그러나 입양에는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생기는 것처럼, 입양에도 어두운 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버려진 아이에게 새로운 가정이 생기는 것은 기쁨과 감격이지만, 아이가 생모와 이별하고 버려진다는 것은 상처이고 아픔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신생아’ 입양이 절대다수고 특히 여자 아이가 입양되는 비율이 높다. 이는 입양 부모들의 선호 때문이다. 태어난 지 1년 이상이 되는 아이들을 ‘연장자’라고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연장자 입양은 극히 드물다.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을 입양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정확한 수치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입양되는 신생아의 90% 이상이 미혼모의 아기다. 한 부모가 신생아를 입양한다는 말은 곧 한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한다는 말이 된다.

미혼모로 인한 연간 요보호아동 발생 수는 10년 전 4000명에서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1500명이 넘는다. 미혼모가 아기를 포기하는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우리나라 미혼모의 40% 이상이 10대다. 한국은 청소년이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사회적인 시선도 따갑다. 미혼모를 관용하는 사회가 아니다. 만약 10대 청소년이 아기를 낳게 됐을 때, 그는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중·고등학교 중퇴자로 아이를 키우며 살지, 학교는 다니되 입양 기관에 아기를 떠나보낼지.

미혼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원가정이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 뿌리의집, 진실과화해를위한입양인모임(TRACK),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입양인 원가족 모임 민들레회 등이다. 이들은 최대한 아이와 엄마가 이별하지 않고 원가정이 지켜질 수 있게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입양하고 권하는 개개인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자꾸 입양만 강조해서는 아이가 버려지는 상황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단체들은 한국교회에 대해서도 이 같은 시각을 가져 줄 것을 요구했다. 이미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응급처치도 중요하지만, 아이가 버려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데에도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랐다. (관련 기사 : 입양 권하는 교회가 알지 못한 것들)

▲ 지난 10년간 요보호아동 발생 유형 현황표. 미혼모로 인한 요보호아동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1년에 1500명이 넘는다. (자료 제공 통계청)

이들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했다. 2012년 전까지만 해도, 입양에 관한 법률의 이름은 ‘입양 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별법’이었다. 정부의 기조가 ‘입양을 촉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뿌리의집 등은, 입양이라는 이름으로 버려진 아이들을 국민에게 떠넘기는 건 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비판했다. 결국 법은 이들의 주장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2012년 입양특례법으로 개정됐다. 아이를 키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이 단체들의 노력으로 청소년 미혼모는 정부로부터 한 달에 15만 원씩 지원받게 됐다. 내년에는 좀 더 나은 수준의 금액이 책정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입양특례법은 입양 기관들과 부모들의 원성을 많이 샀다. 입양 과정에 정부가 개입하게 되면서 절차가 까다로워져, 안 그래도 부족한 국내 입양이 더욱 위축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입양특례법은 아기의 출생 신고를 반드시 친모가 하도록 했다. 아기가 출생의 진실을 알 권리가 있다는 취지였다. 입양 기관과 부모들은, 자신의 호적에 기록이 남을 것을 두려워하는 미혼모가 아기를 유기할 확률이 높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런 부분들을 개정하기 위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자녀가 다니는 주일학교에 미혼모가 온다면?

버려지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정을 찾아 주는 것과, 친부모가 아이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 모두 ‘아이의 행복’을 고민한 끝에 나온 결과다. 응급처치와 제도 개선이 선순환한다면 시너지를 기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입양이 권장되고 입양의 밝은 면이 부각되는 것만큼, 입양으로 인해 생기는 그늘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입양부가 있는 대형 교회는 입양을 권장할 뿐 아니라 미혼모 등 사회적 약자들도 지원하는 일을 하지만, 교회가 공동체 바깥에 있는 약자를 지원하는 것과 그들을 공동체 안으로 끌어안는 것은 다른 차원의 얘기다.

교회에서는 미혼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더욱 어렵다. 한국교회는 혼전 순결을 강조하고 이를 어기면 죄악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혼외 임신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 ‘문란한 아이’라는 시선이 돌아온다. 미혼모에게 교회는, 혼외 임신을 밝히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곳이라기보다 숨기고 떠나야 하는 곳이다. 미혼모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데에 교회는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부산 위드맘한부모가정지원센터 이효천 선교사(섬김선교회)는 13년간 청소년 사역을 하다가 4년 전부터 청소년 미혼모 사역을 병행하고 있다. 10명의 미혼모에게 복음을 전하고 검정고시를 볼 수 있게 교육하는 등 10대 미혼모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이 선교사는 미혼모들이 기존 교회에 적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얘기한다.

“만약 자녀가 교회 중고등부 주일학교에 다니는데, 거기에 미혼모가 왔다고 가정해 보세요. 뭔가 나쁜 물이 들지 않을까 걱정이 될 거예요. 이런 시선들 때문에 (미혼모) 아이들이 기존 교회에 진입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아이들에게도 교회가 필요하고 예수가 필요하죠. 미혼모들만을 위한 교회가 따로 필요한 실정입니다.”

국회는 12월 9일 ‘송파 세 모녀법’을 통과시켰다.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는 법안이다. 당장 이런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게 긴급 복지 지원법을 개정했으며, 그런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국민 기초 생활 보장법을 개정하고 사회보장 급여의 이용·제공 및 수급권자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생명이 위태로운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 주는 것도 중요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교회의 구제도 마찬가지다.

“고아와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한국 교회의 나침반 뉴스파워(newsp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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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으로 돌아가자!!!

저는 현재 요한계시록을 31독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와 로마서와는 달리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서 주신 말씀인데 인류역사가 끝나고 마지막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성전에 대한 얘기입니다. 천사들과 사탄 마귀와의 전쟁 이야기, 성경말씀의 기본적인 지식이 부족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원점으로 돌아가서 창세기를 시작으로 모세오경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에스더, 아가서, 구약성경 39권 중에서 중요한 성경을 공부 중에 있습니다. 일년전에 창세기와 로마서 100독을 할 때 알아진 믿음의 비밀들이 새롭게 기억이 나는군요. 중요한 말씀들이 잊어버려지지않아서 기쁩니다. 아래 메세지는 모세오경의 다섯번째 책인 신명기, 신명기 강해의 열개 메세지 중에서 여섯번째 메세지를 공부한 걸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본 신명기 강해를 통해서 받은 은혜를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교우 여러분! 많은 감동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래-

신명기는 구약의 다섯번째 책이고 특별히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경책 할 것 같으면 성경책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얘기하는 책이다. 물론 그것은 맞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특별히 신명기를 볼 것 같으면 하나님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이웃과 살아야 할 것이냐 다시 말씀드리면 어떠한 공동체를 이루고 우리가 살아야 할 것이냐 하는 말씀도 상당히 자세한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신앙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한 것처럼 또한 이웃과의 관계 어떠한 관계 가운데에 살아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선 신명기에 나타난 이웃과의 관계, 결론적인 말씀을 드리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모든 사람들이 힘있는 사람들이나 또는 부유한 사람들이나 또는 약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랑과 공익의 공동체를 이루자 하는 말씀이 신명기가 말씀하는 공동체의 원칙이 되겠습니다. 우선 결론의 말씀을 먼저 드렸고 이제부터 조금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신명기 뿐만 아니라 구약성경을 볼 것 같으면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있는 사회적인 약한 사람들 사회적인 약자를 얘기할 때 보통 세 종류의 사람을 얘기했습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혹은 객, 이 세 종류의 사람을 항상 말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종류의 분들이 사회적으로 왜 약한 사람들인가 하는 것을 잠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선 성경에서 말씀하는 구약성경에서 말씀하는 고아를 들겠습니다. 고아라는 말은 원래 아버지가 없는 아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아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말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이 다 돌아간 아이를 고아라고 부르지요. 물론 아버지, 어머니가 다 돌아가신 아이를 고아라고 부르지요. 물론 아버지 어머니 다 돌아가시면 고아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갔고 그 아이 어머니가 생존해 있더라도 구약성경에서는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불렀느냐 하면 아버지가 돌아간 아이,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난 과부에게는 구약성경 뿐만 아니라 구약 당시의 주변의 나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남편이 죽었을 때 상속을 하는데 과부에게는 상속권이 없습니다. 재산을 상속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후에는 과부는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위치에 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시더라도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생활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구약에서는 아버지가 없는 아이는 고아라고 불렀습니다.

그 다음에 세번째 나그네는 왜 사회적으로 약하냐 나그네나 객이나 이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던 땅에서 떠난 사람들입니다. 구약시대에 한 자연인 내가 보호받을 수 있는 영역은 내가 속한 지연과 혈연 그 공동체 안에 있을 때 내가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태어난 땅 내가 속한 가족들 그 안에 있을 때 내가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그 지연과 혈연을 떠났을 때 나그네 혹은 객은 법적으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어디 가서 호소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법적인 보호 영역 밖의 사람들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신명기 뿐만 아니라 다른 말씀에도 나그네에게 억울하게 하면 안된다 하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옵니다. 구약에 나타난 사회적 약자 할 때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혹은 객, 이 세 종류의 사람들을 생각하셔야 되겠습니다.

그 다음으로 신명기에 나타난 이스라엘 공동체의 원칙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의 원칙, 첫번째 원칙은 신명기 10:17-18절에 나타난 말씀을 보겠습니다.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신10:17-18절입니다. 거기에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신가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추상적으로 얘기한 것이 아니라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18절의 말씀인데 17절부터 보면 (개역 개정),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그 다음에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하는 말씀입니다. 여기에 세 종류의 사람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는 (또는 공의를 행하시는 혹은 신원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신원한다는 말은 억울함을 풀어 준다는 얘기죠. 원래 구약성경에 쓰여진 히브리 원문 성경에 보면은 뭐라고 되어 있느냐 하면, 하나님은 여기 18절의 말씀입니다. “고아와 과부에게 정의를 베푸시며 공의를 베푸시며” 이런 말씀입니다. 우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 고아와 과부에게 공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란 말씀입니다.

다음에 두번째는 나그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시냐 일반적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약한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던 이런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고 그런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란 것입니다. 구약시대 일반사회에서는 이스라엘 주변 다른 나라들에서 볼 것 같으면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또 이러한 사람들의 권리는 짓밟히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고 이 사람들에게 공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란 말씀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대상이 됩니다.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대상은 이 사람들에게만 한정되느냐 그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주변 나라들에서 볼 것 같으면 이 사람들은 사랑과 정의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꽤 권리가 짓밟히고 무시당하고 억울함을 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고 정의를 베풀어주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을 사랑해 주시고 그들의 권리가 짓밟히지 않도록 정의와 공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정의를 베푸시는 대상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됩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한다 하면서 하나님께서 정의와 사랑을 베푸시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않고 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에게 불의한 일을 행한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곧 누구를 향해서 불의를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냐 할 것 같으면 바로 하나님께 대해서 불의를 행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라는 것이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또 신명기 뿐만 아니라 잠언의 말씀을 볼 것 같으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14:31절에 보면 아주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잠14:31절을 찾아 보겠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그를 지으신 이는 누구를 말합니까. 하나님이시죠. 그러니까 가난한 사람을 멸시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여기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궁핍한 사람은 약한 자지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존경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을 학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이고 그런 사람을 잘해 주는 것은 하나님을 존경하는 것이다. 무슨 얘기냐 할 것 같으면 구약에 나타난 신명기를 비롯해서 지금 말씀을 보면 이러한 잠언의 말씀은 뭐냐 할 것 같으면 사회적인 윤리, 우리가 사회적으로 윤리는 단순히 사회윤리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곧 신학적인 윤리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에 대해서 불의한 일을 행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약한 자에 대해서 불의한 일을 행한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하나님과 관계된 문제다 하는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할 것 같으면 구약에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사랑과 공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이스라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공의를 베푸시는 그 대상에게 이스라엘 백성들도 사랑과 공의를 베풀어 주어야 한다는 논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말씀 드리지만 신명기에 나타난 사회적인 윤리 특별히 약자를 보호해 주는 법들, 약자를 보호하라는 말씀은 단순히 인도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 이시냐 약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정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 이시냐 하는데 기초한 신학적인 윤리가 된다 하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첫번째 신명기가 말씀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원칙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 고아, 과부, 나그네를 대표적으로 얘기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사랑과 공의를 베푸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두번째 원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15:11절의 말씀입니다. 짧은 한 절의 말씀이지만 대단히 중요합니다. 같이 찾아보겠습니다. 사회문제에 대해서 대단히 현실적인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 안에 네 형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 그랬습니다. 여기에 첫번째 말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하는 말씀입니다. 이 문제는 경제적인 평등의 문제와 관계된 문제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가 특별히 경제적인 평등문제입니다. 경제적 평등. 평등엔 여러가지 차원이 있겠지만 특별히 경제적으로 어떻게 다 평등한 사회를 이루겠느냐 사실은 대단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경제적인 평등문제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로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는 사회가 될 것이냐 예를 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돈을 나누어주면 평등한 사회가 될 것이냐 예를 들어서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돈을 매달 준다. 그러면 평등 하겠느냐. 처음에는 다 평등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다시 불평등해집니다. 왜냐 할 것 같으면 어떤 사람은 한번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나오기가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잘 안나와요. 그러나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돈이 들어가면 곧 쓰지 않으면 좀이 쑤시는 사람도 있어요. 자기 것만 쓸 뿐 아니라 꿔서 쓰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소비하는 게 다르기 때문에 평등이 곧 깨어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곧 경제적인 평등을 이루는 사회가 되느냐 그렇게 쉬운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땅에는 언제나 가난한 자가 있을 수 있다 하는 말씀은 대단히 현실적인 말씀입니다.

이 땅에 가난한 자가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의 말씀은 그러하다면 네가 할 일은 무엇이냐 이것이 중요합니다. 네가 할 일은 지역내 같이 사는 네 형제들, 곤난한 자와 궁핍한 자, 경제적으로 약한 자에게 네 손을 너그럽게 펼쳐 주어라 하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경제적으로 약한 형제와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를 이루라 하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에 나타난 두 가지 원칙, 첫번째는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에게 사랑과 정의를 베푸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고, 두번째는 경제적으로 약한 형제들에게 너그럽게 손을 펼쳐서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이루라 하는 것이 신명기가 말씀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중요한 원칙이 되겠습니다. 그러면 이런 두가지 원칙에서 세부적인 말씀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이 원칙을 실행할 수 있겠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더불어 함께 사는 사랑과 정의로운 공동체를 이루려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신명기에 나타난 중요한 것을 열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 신명기의 말씀에 강조된 것 중 하나는 공정한 재판을 해라 하는 것입니다. 고대시대에 흔히 경제적으로 약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힘없는 사람들은 억울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신명기가 강조하는 말씀은 재판을 공정하게 해라. 약한 사람의 재판이라고 해서 절대로 억울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24:17절이나 27:19절에 이 말씀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 공정한 재판에 관한 말씀은 단순히 신명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다른 말씀에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명기에도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볼 것 같으면 재판이다 판결이다 하는 말씀이 많이 나옵니다. 히브리말로 그걸 미슈파트라고 말합니다. 미슈파트. 같이 한번 해 볼까요. 미슈파트. 미슈파트란 말씀인데 이 미슈파트란 말은 또 하나의 뜻이 있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 하면 정의라는 말입니다. 똑같은 말입니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읽을 때 미슈파트 라는 말이 나올 경우에 어떤 경우에는 그걸 재판이라고 번역할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그걸 정의라고 번역할 경우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보았던 신10:18절의 말씀에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고아와 과부에게 정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 할 때 거기에 바로 정의 미슈파트란 말이 사용되었습니다.

재판이라는 말과 정의라는 말이 똑같다 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재판은 재판을 통해서 정의를 실현해야 된다는 그런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은 정의가 실현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절대로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억울하게 하고 또 힘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두둔해서는 절대로 안된다 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선 공정한 재판을 해줘라 정의를 실현시켜라 하는 말씀입니다. 두번째 신명기의 말씀은 독특한 추수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농사를 짓고 추수할 때 이렇게 추수해라 하는 말씀이죠. 이걸 같이 보겠습니다. 신24:19-22절의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세가지 종류의 추수가 나옵니다. 첫째는 밭, 곡식을 추수하는 것이고, 다음엔 감람나무, 다음에는 포도나무를 추수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상당히 독특하게 특이한 방법으로 말씀이 되어 있습니다.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추수할 때입니다.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지고 오지 말고” 곡식단을 떨어뜨렸어요 그러면 돌아가서 그것을 줍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고 그랬습니다. 그것은 고아와 과부와 객의 차지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20절에, “네가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이 감람나무는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감람나무 열매가 식탁에 언제나 올라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김치가 꼭 식탁에 올라오는 것처럼 감람나무 열매는 꼭 식탁에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래서 항상 먹는 음식이죠. 이 감람나무를 떨 때 깡그리 다 털지 말고 적당히 털라는 얘기입니다. 적당히 털어서 남은 것은 누구의 차지냐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남겨두라는 말씀입니다.

그 다음에 21절입니다. “네가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남겨두라” 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포도나무를 딸 때에도 깡그리 따지 말고 적당히 적당히 따라는 얘기입니다. 남은 것은 약한 사람들, 객과 고아와 과부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추수하는 방법을 볼 것 같으면 곡식을 추수하든지 감람나무를 떨든지 또는 포도를 딸 때에 다 어느 정도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우리가 룻기를 볼 것 같으면 룻이라는 여자는 모압지방의 여자죠. 이방인 여자입니다. 그러나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왔습니다. 베들레헴 지역에 와서 시어머니와 같이 삽니다. 그런데 룻이 어떻게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까. 어떻게 두 여인이 살았느냐 하면 룻이 밭에 가서 밭을 추수하는 사람의 뒤를 쫓아 갔습니다. 그래서 여기의 말씀대로 하면 밭을 추수할 때 깡그리 추수하지 않았습니다. 남은 이삭을 주워서 시어머니와 자기가 살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추수하는 방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켰던 것을 우리들이 알 수가 있습니다.그 다음에 세번째로 신명기 23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신23:24절을 보면 상당히 특이한 정말로 오늘날 이대로 지킨다면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씀이 하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랬습니다. 다른 사람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포도를 먹어도 좋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그릇에 담는 것은 안되지만 그러나 다른 사람의 포도원에 들어가서 포도를 마음대로 먹는 것 그것은 좋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25절을 보면,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들어갈 때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 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 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곡식을 따서 먹는 것 까지는 좋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사람의 포도원이나 다른 사람의 곡식 밭에 들어가서 손으로 따서 먹는 것은 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탐심을 내고 욕심을 내서 큰 자루를 가지고 간다든가 해서 다른 사람의 포도원에 가서 막 따서 자루에 집어 넣어서 지고 나온다든가 또는 낫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곡식을 다 베어 가지고 나온다든가 하는 그런 것은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 신명기 23장에 다른 사람의 포도원이나 곡식을 손으로 따서 먹어도 좋다는 그 말씀의 정신과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최소한도 이스라엘 공동체는 배고픈 사람이 없는 사회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포도원이 있고 곡식 밭이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기는 먹을 것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포도원도 없고 곡식도 없는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의 포도원이나 밭에 들어가서 이삭과 포도를 어느 정도는 먹는 것을 허락해 주라는 말씀이죠. 그래서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는 최소한도 배고픈 사람은 없는 모든 사람이 같이 나누어먹는 그런 공동체가 되라는 말씀입니다. 금방 말씀 드린대로 탐심을 내서 욕심을 내서 자루를 가지고 간다든가 낫을 가지고 가서 다른 사람의 밭의 곡식을 다 베어가지고 나온다면 이건 경제질서 자체가 다 문란해 집니다. 욕심내는 것은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다음에 신명기가 말씀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원칙 가운데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무엇이 냐 하면 구제를 위한 십일조입니다. 구제를 위한 십일조 구약에 보면 십일조가 있습니다. 십일조는 그 원칙이 무어냐 하면 내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내 힘으로 내 능력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셨다 하는데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주셨는데 그 중에서 십분의 일은 주신 분에게 돌려드립니다. 그 물질도 중요하지만 십분의 일을 드림으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다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는 감사의 표현을 십분의 일을 다시 돌려드림으로써 나타내라 하는 것이 십일조의 정신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그러한 십일조 외에 구제를 위한 십일조가 또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신명기에 보면 대단히 중요하게 말씀했어요. 이제 곧 우리가 보겠지만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드릴 때는 드리는 기도의 예문까지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려라 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예문까지 나와 있기 때문에 피할래야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만큼 신명기에서는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중요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두 군데 있습니다. 신14:28-29절 과 신26:12-15절에 있는 데 두번 째 말씀을 보겠습니다. 신26:12절을 보면, “셋째 해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모든 소산의 십일조 내기를 마친 후에” 우선 구제를 위한 십일조는 삼년 마다 바치기로 얘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삼년 마다 십일조니까 평균하면 매년 자기 소득의 삼십분지의 일을 구제를 위한 십일조로 내어 놓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년 곧 십일조를 드리는 해에 네 모든 소산의 십일조를 다 내기를 마친 후에 “그것을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네 성읍 안에서 먹고 배부르게 하라” 여기에는 한 사람이 더 포함되어 있습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 그 앞에 레위인이 나와 있습니다.

레위인은 구약에서 보면 레위지파 사람들이죠. 레위 지파 사람들은 제사장 지파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성직자 지파가 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제비를 뽑아서 땅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분배할 때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는 땅을 분배해 주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레위지파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구약 시대에 물론 하나님께 예배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솔로몬 성전을 지었을 때 솔로몬 성전에서 예배의 중심이 되었고 여러가지 예배에 관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 레위지파 사람들에게서 또 하나 중요한 일은 레위지파 사람들은 선생님으로서의 책임이 있었습니다. 무슨 선생님이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들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예배에 관한 책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그러한 책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이 레위 지파 사람들에게 땅을 분배할 때 특정된 땅을 나누어 주었다면 레위지파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만 몰려살게 됩니다. 그러면 안돼지요. 레위 지파 사람들은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줘야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 레위지파 사람들에게는 도시는 여러군데 지정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특정된 땅을 분배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은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이 다 경제적으로 후원을 해 주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나타난 걸 보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삼년 마다 바쳐서 성 안에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라는 것입니다. 같이 먹어야 됩니다. 그런데 거기에 표현이 하나 재밋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서 그저 먹을 정도로 줄 정도가 아니라 먹어서 배가 부르게 하라고 했습니다. 배부를 정도로 나누어 주라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우선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말씀했고 그 다음에 신26:13절에 보면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 할 때에” 그리 할 때에란 것은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바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그랬습니다. 아뢰기를 이렇게 기도하라.

“내가 성물을 내 집에서 내어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기를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 명령대로 하였사오니 내가 주의 명령을 범하지도 아니하였고 잊지도 아니하였나이다” 이렇게 기도의 예문이 나와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기도의 예문이 나와 있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바칠 때에는 이렇게 기도하면서 이 구제를 위한 십일조를 바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이블 아카데미 신명기 강해에서 인용).

(1). 아래 글은 오래 전에 어느 해인가 서울대학교 총장의 졸업식 축사입니다. 총장이 기독교신자 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내용이 성경적이고 공감을 받았습니다 – 여러분이 이 학교에서 4년 동안 공부한 것은 여러분의 공도 있지만 부모님의 공, 선생님들의 공, 가족과 친지의 공도 있었다. 또한 여러분이 공부하는 혜택을 받는 동안 공장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밤낮으로 일한 여러분 또래의 젊은이들도 있었음을 잊지 말라. 여러분은 이제 이 학교에서 갈고 닦은 실력을 사회에 나가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엘리트로 선택된 사람으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잊지 말라.

(2). 이스라엘 부모들은 레위기를 어린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친다고 합니다. 그걸 어린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보면 레위기는 분명히 쉬운 책이고 기본적인 것을 가르치는 책이란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그것이 어렵고 잘 읽혀지지 않는 책이 되었을까요? 레위기 1: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회막에서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라고 했습니다. “말하여 이르라” 는 분명히 이스라엘 자손,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내용을 알려 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은 오늘날 이방인인 한국의 교인들을 말할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는 분명히 어렵지 않은 책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 어린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 레위기는 오늘날 춘천동부교회 교인들도 똑같이 알아야 될 기본적이고 중요한 책입니다. 그런데 왜 레위기가 오로지 목사님들이 주로 읽는 책이라고 알려졌을까요?

(3).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세 가지 표어 (이신칭의, 오직 예수, 만인 제사장 주의)를 내걸고 종교개혁을 했지만 아직도 만인제사장 주의가 완전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데 이것은 신학이 목회자들만의 전유물로 남아 있는데에도 그 원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평신도들도 올바르고 건강한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성경을 열심히 읽고 질문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신학이 잘못되면 신앙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교회다워야 할려면 나이만큼은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4). 교회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기도와 찬송과 설교가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올 때는 목사도 죄인으로, 장로도 죄인으로, 선교사도 죄인으로 나와야 합니다. 모든 교인들이 죄인으로 나와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없으면 한 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라는 심정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소리없이 흘리는 회개의 눈물이요 땀이며 남 모르게 쏟는 눈물입니다.

남기영 서리집사

20201024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해 남겨 두라 (신명기 24장 17-22절) – 코너스톤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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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신 24:18) 너는 애굽에서 종이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신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신 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구약성경에서 가난한 자와 비슷하게 취급하는 세 부류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아, 과부, 나그네입니다. 전쟁이 빈번이 일어났던 고대 사회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또한 의학이 현대처럼 발달하지 않은 이유로 전염병이나 다른 육체적 질병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면 가난하여 먹고 살 형편이 되지 못했습니다.

과부의 경우도 비슷합니다. 남편이 전쟁에 나가 죽어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과부가 되는 경우가 허다했으며, 남편이 병으로 인해 죽는 경우들도 많았습니다. 가정의 경제적인 면을 대부분 남자들이 짊어지는 시대였기에,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과부들은 사회적 약자인 동시에 가난한 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아나 과부의 경우 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습니다. 고아는 나이가 어려 일할 수 없고, 과부의 경우 아이가 있어서 일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는 사회적 성차별로 인해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아 일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처럼 이스라엘 사회에서 가장 연약하고 가난한 계층들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가난하고 힘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에 대한 재판을 억울하게 진행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17절 말씀입니다. “(신 24: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말며 과부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 객은 나그네들을 의미합니다. 나그네나 고아나 과부는 가장 약하고 의지할 곳이 없는 불쌍한 이웃들입니다. 이들은 사회에서 가장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눈은 바로 이런 자들을 향하여 계십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환난에 처한 자들을 돌아보아 보호해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재판을 할 때도 이들이 가난하단 이유로 억울한 판결을 받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17절에 보면 이들의 ‘옷을 전집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즉 이들의 옷을 전당잡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입는 옷은 그냥 옷의 기능만 가지고 있습니다만, 이 당시 겉옷은 가난한 자들이 덮고 자는 ‘blanket’ 역할을 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해가 떨어지고 밤이 되면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졌습니다. 만일 옷을 밤새 전당 잡으면 가난한 사람들은 밤새 추위에 떨게 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이웃들의 필수품인 옷을 전당잡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추수할 때도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고 자비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절 말씀을 봅시다. “(신 24: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농부가 밭에 나가서 곡식을 베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밭에서 곡식 한 다발을 가지고 오는 것을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연히 밭에 가서 잊어버린 곡식 한 다발 가지고 오는 것이 정상이고 상식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시 밭에 돌아가서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난하고 굶주린 나그네, 고아, 과부가 그것을 먹을 수 있도록 두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들을 위한 자비심을 베풀 것을 원하십니다. 19절에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 자비심을 베푸는 자에게 하나님은 그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가 형제, 자매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비롭게 행하는 것을 무척 기뻐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20-21절도 같은 원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신 24: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며 (신 24: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20절은 감람나무를 떤 후에 남은 것까지도 모조리 가져 가려고 살피지 말고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는 명령입니다. 21절은 포도를 딴 후에 나그네, 고아, 과부를 위해 남겨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기 배만 채울 것이 아니라, 이웃들의 어려움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22절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애굽 땅에서 종으로 살아가던 시절을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 24: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한 때는 그들도 가난했고, 굶주렸고, 헐벗었고, 연약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향해 자비를 베푸사 그들을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봐주셨던 것처럼 이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야 하는 차례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갖는 것이 아니라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요단강은 계속해서 물을 흘려 보내기 때문에 온갖 생물들이 싱싱하게 생명력 넘치게 살아 있습니다만, 사해는 물을 품고 있기에 물이 썩어 이름 그대로 죽은 바다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을 흘려보내십시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로 우리 삶에 채워주실 것입니다.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야고보서 1:27 KRV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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