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복음 7 장 12 절 | [10분 메시지] 1편 – 사람 관계의 핵심, 마태복음 7장 12절 By 신윤석 목사 최근 답변 5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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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7-12 황금률

마태복음 7장 12절은 황금률이라 불린다. 이는 성경뿐 아니라 논어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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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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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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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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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마태복음 7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12절에 기록된 말씀은 5-7장에서 가르친 일반적인 개요가 된다. 이 구절은 사실상 부정적인 문구로 되어있는 유대인 형식의 황금률 [무릇 네가 싫어하는 일은 다른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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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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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7-12절/ 산상설교(46) 율법과 선지자의 뜻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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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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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율 – 마태복음 7:12 – 한인 그리스도의 교회

오늘은 7장 12절 한 절만을 가지고 말씀을 증거하게 됩니다. 몇 절을 더해서 할 수도 있겠지만 오늘 본문 말씀의 중요성 때문에 오직 한 절만 택한 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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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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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12절(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법 ) – 시냇가교회

마 7장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산상설교의 하이라이트 부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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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12-14절 / 상식을 뛰어 넘는 상식 – 목회 아카이브

모든 사람은 좁고 협착한 길, 꼬불꼬불하고 험한 인생의 길을 걷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무슨 일을 하여도 도와주는 사람 하나 없고, 새로운 계획을 추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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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7:7-12) – 에큐메니안

즉 그저 필요한 게 있으면 생겨나고,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고, 들어갈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간구해야 하고 찾아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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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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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 메시지] 1편 - 사람 관계의 핵심, 마태복음 7장 12절 by 신윤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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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마태 복음 7 장 12 절

  • Author: CGNTV Americ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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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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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7-12 황금률

마태복음 7장 12절은 황금률이라 불린다. 이는 성경뿐 아니라 논어에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말라(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것을 황금률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종교와 철학에서 공통되게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하는 것은 다분히 윤리적 양식으로서 이 말씀을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성경의 모든 말씀은 행위의 근본 성품이 있으면 된다는 것을 늘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것을 대접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것이다.

대접한다는 것은 물 한 그릇 밥 한 그릇 대접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어떤 존재로서 대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어떤 존재로 대하느냐만 정해지면 대접 받는 모든 행위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고, 바른 대접을 하게 되어 있다. 상대를 대통령이라고 인정하면 그것에 맞는 대접을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남을 내가 어떤 존재로 여기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내가 남을 어떤 존재로 여긴다는 것은 결국 나도 그와 같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는 스포츠에서도 체급이라는 것이 있는데, 상대를 나의 상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나도 그와 같은 체급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마태복음 16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좀 전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시고 또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라고 답 했을 대 예수님께서 “네 말이 옳도다.” 하셨다. 이것이 바로 대접이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그리스도로 인정했을 때, 베드로가 하나님의 아들의 성품을 표현하는 사람,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접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면 그에 따른 대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대접이라는 것은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인정하느냐에 종속된 것이지, 대접하는 것 그 하나가 독립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우리가 사람을 보는 관점이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하나님이 만드신 존재로 보면, 그에 맞는 대접을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로, 또한 그러한 목적 아래서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여긴다면 그에 맞게 대접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내가 하나님과 같은 관점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므로 당연히 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존재이고 또한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네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 다른 사람도 그런 존재로 대하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면 대접은 그에 종속된 것이기에 자연스러운 것이 되기 때문이다.

신앙에 있어 사람을 보는 관점은 절대적인 것이다. 사람을 보는 관점이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드시고 가지셨던 관점으로 보는 사람은 타락하기 전의 세계에 사는 것이고, 사람을 부끄럽고 감출 것이 많은 연약한 존재로 보는 사람은 타락한 이후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관점을 가졌는지에 대한 기준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생명을 가져야만 가능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것이다. 남을 어떻게 보고 또한 그 보는 관점에 따라 대접한다는 것은 결국은 그 사람이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우리나라 말에 ‘뭐 눈에는 뭐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로 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황금률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구하라 주실 것이요>라는 말씀에 이어서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하신 말씀에 이어서 이 말씀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좋은 것이라고 하는 것으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구하라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정체성, 곧 우리 육신을 가진 사람의 인생의 목적이자 내용을 구하라는 말씀이고, 또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휘발유은 휘발유로 동력을 발생시키겠다는 목적을 가졌기에 휘발유가 가장 좋은 것이듯,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존재로 지어졌기에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수 있는 생명인 그리스도의 성품이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인생의 존재 목적인 그리스도의 성품을 가지는 것을 구하고, 또한 다른 사람도 그러한 목적 아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람을 그런 존재로 대하라는 말씀인 것이다. 그것은 그렇게 한다는 것이 바로 구한 것을 주신 것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기에 우리가 남을 그렇게 대접한 대로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왕국을 보다보니 사바나에 떠났던 코끼리가 돌아온다는 것은 곧 우기가 올 것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즉 우기가 온다는 것과 코끼리가 돌아오는 것은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우기가 오기 때문에 코끼리가 온 것이기도 하고, 또한 코끼리 안에 있는 본성이 우기가 오는 것을 알아서 회귀하는 것이기도 한 것이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이와 같다. 남을 어떻게 대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런 대접을 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남을 대접한다는 것은 이미 내가 어떤 대접을 받을 사람인지가 정해졌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대상으로 본다는 것은 이미 그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실제로 우리는 사람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관점이 있다. 성선설도 성악설도 또한 여러 철학적 관점들도 있다. 그리고 성경에도 사람을 보는 관점이 있다. 그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사람을 보시는 관점과, 다른 하나는 선악과를 먹은 아담이 사람을 보는 관점 그것뿐이다. 성경에서 사람을 보는 관점은 다른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신다고 하시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특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할 존재로 기대하시고 그렇게 이끄신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사람과 세상에 진노하시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연약하고 부정한 것으로 보는 시각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든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사람을 그렇게 보는 것을 악한 것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하심에 격분하는 유대인들의 생각을 악한 생각이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 그러니까 육신을 가진 사람이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책망하셨다. 사람이 사람의 죄를 사한다는 것은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사람에게 존재의 목적을 알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의 권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죄를 사하는 것이 곧 사람의 존재 목적을 알게 하는 것이고, 그것은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아래서 보는 관점을 가졌다는 것이며, 그런 관점을 가졌다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이미 남을 대접하는 대로 대접을 받는, 더 정확히는 그런 존재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7

비판하지 말라(눅 6:37-38, 41-42) 1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2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5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6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눅 11:9-13)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좁은 문(눅 13:24) 13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14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눅 6:43-44, 47-49; 13:25-27)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17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18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19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산상설교(46)

– 율법과 선지자의 뜻 –

마태복음 7장 7-12절/ 7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예수님은 자신의 부름을 통해서 자신을 따름에 있는 제자들을 자신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거룩함에 두시고서 그들의 마음을 이곳에 있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이 언제나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함에 있게 하시는 것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그런데 예수께서 이 구함에 있게 하신 것의 이해를 잘못 가지고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본의와는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라고 말씀하시며 그러한 자에게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아낼 것이요’,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라고 하셨다며, 이렇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에 있으면 마침내 그 응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구하고 찾고 두드린 것을 얻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로 말해나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어느 글에서는 이 구절을 가지고 교회 성도들이 기복주의 신앙에 있어서 잘못 구하고 있다며 크게 질책하면서 결국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에 있으면 신자들이 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더해주신다고 하였으니 걱정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하여서, 결국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 신자들이 구하는 것을 얻는 방법, 비결, 조건으로 삼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구하게 하시는 것을 신자들이 구하면 하나님은 신자들이 구하는 것을 들어주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기복신앙에 신자들이 있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입니다. 예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구함에 있게 하신 그 구하는 것을 반드시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시는 것에서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에게 주실 것을 구함에 있게 하셨으니 그들이 구하는 것을 반드시 주실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자신들이 구하는 것을 반드시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가 떡 대신에 돌을 주며, 또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그 아버지가 뱀을 주겠느냐면서 악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욱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떡을 달라고 하는 그 떡을 주시는 것이며, 생선을 달라고 하는 그 생선을 주시는 것이지 떡 대신에 돌을 주며 생선 대신에 뱀을 주지 않습니다. 이는 말이죠. 비록 악한 사람일지라도 잘못 구하는 그 잘못된 나쁜 것을 주지 않고 그것보다 더 좋은 바른 것을 줍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함께 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잘못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구하게 하신 그 좋은 것을 구하는데 그들이 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나쁜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구하는 그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것은 말이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자기 의를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말이죠. 이방인들이 자기들의 몸을 위하여 무엇을 구할 것인지 무엇을 마실 것인지 무엇을 입을 것인지를 염려함에 있어 구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그것은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취해지는 것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에서는 결코 나오지 않는, 그래서 이것들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참으로 더 좋은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예수께서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구하게 하신 것을 말씀해 주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 누가복음 11:13에서는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구함에 있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에 그들의 기도가 지속적으로 있으며 그 성취에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게 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그들이 구하는 기도의 성취에 있기까지 함께 하시며 하나님 아버지를 찾으며 부르짖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양자의 영으로 보내주셔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십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0:19-23에서는 성령을 주심으로 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들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 안에 계신 성령을 좇아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자신들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며 삽니다. 그리고 이 일로 말미암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으나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서 그들의 생명은 끝까지 견딤에 있도록 안전히 보전되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마지막 절에 이르러서는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은 종종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자는 그러기에 앞서서 먼저 주의 종을, 또는 이웃을 대접하라는, 그래서 그래야 그 대접함으로 인하여 그 또한 대접을 받을 것이란 논리로 잘못 이용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와 레위기 19:18의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를 인용하시면서 이 두 율법이야 말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그러니까 ‘율법과 선지자가 말해온 본의<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왜 여기서 이야기가 되고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구하심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주셔서 그들이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는 일을 예수님의 부르심에 있는 열 두 제자에게서 시작하여 장차에는 –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 온 세상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행하여 나가실 것인데, 이는 구약의 율법과 선지자가 말해온 하나님의 뜻인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율법과 선지자가 말해 온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에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셔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온 세상에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의 몸과 같이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온 세상에 있는 천하 모든 민족에게 그들이 유대인과 이방인 누구이든지 간에 차별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함에 있게 하시는 것에서 실행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에서의 ‘대접’은 인간적, 인격적 대우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른 사람들이 구하는,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야 할 것을 얻음에 있게 하는 의미에서 하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온 율법과 선지자가 말해온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섬김에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원수, 동포, 이웃 모두는 그리스도와 같은 몸의 일부분인 지체가 되어 하나의 몸을 이룸으로 자신의 몸과 같이 서로 사랑하는 ‘은사’를 성령으로부터 날마다 공궤 받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7장 12절(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법 )

마 7장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산상설교의 하이라이트 부분입니다. 산상설교의 주제는 제자도를 설명합니다. 제자의 삶을 사는 자가 하나님을 나라를 소유하고 하나님나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접을 하고 섬기며 봉사 하는 것은 제자의 삶입니다. 단순히 더 인정받고 돌아올 상급을 위해서 대접하고 섬겨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과 관계가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산상설교를 다시 마태복음 25장에서 정리 하시며 주님은 섬기고 대접하는 삶이 일상이 되어야 함을 강조 하셨습니다. 오히려 그 삶을 살고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일상이 되지 않고는 천국 잔치에 참여 할 수 없음을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강조 하십니다.

대접하는 것이 율법이요 선지자(구약) 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순종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복된 한날 되길 바랍니다.

구하라 주실 것이요(마태복음 7:7-12)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은혜로우면서 모호한 말씀

오늘의 성경 본문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에 붙들고 사는 말씀이며, 크신 은혜의 말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 아내가 가장 사랑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읽을 때면 때때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몇 가지 요소들은 말씀을 이해하는데 약간의 혼란을 줍니다.

먼저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옵니다만 말씀의 맥락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경우에는 우리가 산상수훈이라고 부르는 말씀 모음의 끝부분에 오늘의 본문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앞선 말씀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뒤이어지는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과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서 우리는 분명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구원 또한 사람에 대한 선한 행위라는 흐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누가복음의 경우는 오늘의 본문이 주기도문 뒤에 나옵니다. 거기에 마태복음에는 없었던 비유도 한 가지 추가되어 있고, 마태복음 7장 12절의 황금률은 11장이 아닌 6장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눅6:27-38)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 뒤에 오늘의 본문이 이어져 있는 누가복음 11장은 ‘하나님에 대한 간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다는 말씀이 핵심입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겨납니다. 마태복음 7장도 누가복음 11장과 같이 ‘간구와 은혜’라는 주제로 단정 짓기가 모호하기 때문입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는 그렇게 단정할 수 있겠지만, 마지막 12절,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황금률이 오히려 본문의 의미를 어렵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렇기에 이 문제를 포함하여 오늘 본문이 가지고 있는 애매함을 생각해보고, 결국 이 말씀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히는 마태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간구와 구원?

오늘의 본문의 말씀에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구하라(아이테이테)’, ‘찾으라(제테이테)’, ‘문을 두드리라(크루에테)’ 모두 명령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그저 필요한 게 있으면 생겨나고, 잃어버린 것을 찾게 되고, 들어갈 문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받기 위해서는 간구해야 하고 찾아내기 위해서는 찾아야 하고, 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노크를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의미는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이루어진 도마복음서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마복음서에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구하는 사람은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에게 열릴 것이다(도마 94).” 구하는 사람이 찾게 되고, 문을 두드린 사람에게만 문이 열립니다.

▲ 산상수훈을 전하시는 예수 ⓒGood News Bible 삽화

그렇기에 우리는 이 본문을 기도에 대한 명령, 하나님께 끊임없이 간구해야 한다는 명령으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신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간구의 중요성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세 가지의 명령이 모두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구하라’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에서와 같이 끈질기게 간구하는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찾고’,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도 함께 하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 우리는 해석을 적용해야 할 필요를 느낍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이 본문에 적용시키게 됩니다. 이 말씀에 하나님 나라를 적용시키는 해석 방법이 잘못되지는 않았습니다. 뒤따르는 14절에서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라고 말씀하시며 구원의 길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21절에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의 행위와 천국에 들어감’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말씀에 적용시켜보면, 하나님 나라를 찾고, 하나님 나라의 문을 두드리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는 구원의 이야기로 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정리해본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간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찾고 그 문을 두드리는 일입니다. 이를 두 단어로 바꿔보자면 ‘간구와 구원’입니다.

이 해석은 지금까지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말씀입니다. 또한 오늘 본문을 뒤이어지는 본문들과 연결해보았을 때,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앞선 ‘남을 비판하는 문제’와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으며, 오늘의 본문 자체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게다가 앞서도 제기했듯이 ‘하나님께 간구함’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감’으로 이 말씀을 정리하기에는 12절 황금률의 위치가 애매합니다.

현실 속에서 관계의 이야기

여기에서 오히려 누가복음 11장으로 눈을 돌려보게 됩니다. 누가복음에는 마태복음에 나타나지 않은 비유가 등장합니다. 한 사람이 있었는데, 한밤중에 근처에 사는 친구가 집에 찾아와 떡을 빌려달라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여행 중인 친구가 왔는데, 자신의 집에는 대접할 음식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순간에 그 사람이 과연 시간이 늦었다는 이유로 친구를 문전박대하겠느냐고 예수님께서는 질문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놓고 보면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행동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순서는 좀 다르기는 합니다만, 자신의 주변에서 떡 빌려줄 사람을 찾고, 그의 집 문을 두드리고, 그에게 떡을 요구하였을 때, 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구를 위한 떡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누가복음에 나타난 이 비유는 주기도문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과부와 재판장의 비유’와 유사한 맥락에 있습니다만, 이 비유의 상황을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의 말씀에 적용시켜본다면 마태복음의 말씀은 상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주변에 있는 이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요구했을 때에 간구했을 때에 나를 돕는 것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오해하면 안 될 것이 하나님 없어도 주변 사람들에게 간청하면 그들이 다 해줄 수 있다거나 그렇기에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둘 다 이 말씀 바로 아래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이 덧붙여져 있습니다.

정리해서 다시 말해보자면 이렇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은 우리가 세상 속에서 어떤 문제에 직면하여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도움을 요구할 사람을 찾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고, 도움을 요청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각하시며, 그를 통하여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의미가 됩니다. 우리가 도움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든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실제적인 우리가 마주하고 대하며 도움을 받은 것은 우리 주변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오늘 본문과 한 단락으로 묶여있는 마지막 절 12절의 말씀도 이해가 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여기에서 ‘남’은 헬라어로 ‘안드로포이’, 즉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사람들을 대접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실제적 도움을 주도록 하나님께서 쓰시는 것이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분명 그들에게 마찬가지의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이를 바꿔 말하면 그들에게 도움을 받고자 하는 만큼 우리도 도움을 주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생각해본다면, 내가 남을 도왔던 만큼만, 또는 내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만큼만 나도 남에게 요구하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이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가 사람에게 도움을 요구할 때에도 적용할 수 있어 보입니다. 나에게 과분한 것들, 내 욕심에 의한 것들을 남에게 요구하는 행동은 결국 내가 남에게 하지 못하는 요구일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남들에게 그런 도움도 주지 않았고, 앞으로도 주지 않을 것이면서 나의 욕심에 의해 남에게는 과분한 요구를 하게 됩니다. 야고보서의 말씀은 결국 우리가 하나님에게나 사람들에게 그런 요구를 해보았자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간구와 구원’이라는 주제와 뒤에 살펴본 ‘현실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성과 도움’이라는 주제는 전혀 다른 주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마태복음은 이를 융합하려고 했습니다. 즉 우리가 이 두 가지 주제를 모두 느낄 수 있도록 말씀을 구성해놓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이웃을 향한 사랑, 이 두 가지가 모두 있어야 그곳에 생명이 있고 구원이 있음을 전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렇기에 두 가지 중 한 가지 방법만으로 오늘의 본문을 읽어나갈 때에는 언제나 애매함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 후의 기쁨

마태복음이 전하는 이야기, 구하면 얻으리라는 말씀은 아마 여기에서 정리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라는 말씀에 대해서 한 가지를 더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 본문을 볼 때면 항상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 가지 비유가 떠오릅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은 사람’,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찾은 여인’,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아버지의 비유’입니다. 모두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비유입니다.

양을 잃어버린 주인은 찾아 헤맨 끝에 양을 찾습니다.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여인도 부지런히 찾아서 드라크마를 찾습니다. 잃어버린 아들, 우리가 탕자라고 부르는 이 사람은 가장 비천해졌던 순간에 아버지를 찾아가고 아버지의 집 문을 두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을 노예로 받아주기를 간구합니다. 그때에 그는 다시 아들의 자리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비유들의 핵심은 기쁨입니다. 찾아낸 기쁨, 회복된 기쁨, 얻어진 기쁨, 그리고 그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물론 마태복음에서는 이 세 가지 비유 중 두 가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얻어낸 기쁨, 찾은 기쁨, 문이 열린 기쁨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기쁨을 나누라는 이야기는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신 이야기가 무엇일까? 그 전체적인 말씀들의 맥락을 헤아려보면 그 기쁨을 누리고 나누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계신다고 생각이 됩니다. 내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얻고, 발견하고, 문이 열리는 기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그 기쁨은 나 홀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 특히나 나에게 도움을 준 이들, 나와 함께 해준 이들과 나누기 위함입니다. 또한 이 기쁨을 나누는 장소, 넘치는 기쁨을 나누는 그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도 합니다.

말씀 정리

말씀을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얻기 위해서, 찾기 위해서, 문 안에 들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간구해야 하고 찾아야 하고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끊임없이 간구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찾으며 그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기에 ‘하나님 나라’라는 먼 곳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내 이웃들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시지 않고 현실적인 방식으로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주변의 사람들, 우리의 이웃을 통하여 우리로 얻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먼저 도움을 주고 그들이 또한 우리를 도울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행해야 합니다. 거기에 우리는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기 때문에 그 사람이 도울 수 있는 만큼의 것들을 요구해야 합니다. 말도 안되는 것들을 요구하거나 찾아서는 결국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서 얻게 되는 것은 참된 기쁨입니다. 생명과 구원의 기쁨이면서 또한 나눔의 기쁨입니다. 나 혼자 즐기는 기쁨이 아니라 도움을 준 사람과 또한 도움을 주지는 않았더라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나누게 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시며 살아가시고, 거기에만 집중하지 마시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성도님 되시길 바랍니다.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도움만이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기도를 부탁한다고 한다면, 나 역시도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왔어야만 했고 지금까지 못했다면 기도를 부탁한 이후라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를 위해 기도해 줄 것입니다. 먼저 도움이 되시고, 그 후에 도움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곳에 은혜를 내리셔서 구하는 바를 얻을 수 있게, 찾는 바를 찾을 수 있게, 그 문안으로 들어가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도와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속에서 여러분도 도움을 받게 되길 바라고, 또한 그 안에서 큰 기쁨을 누리시며 그 기쁨을 나누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그 기쁨 주실 줄 믿고 바라며 그렇게 되길 축원합니다.

이성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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