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을 행하되 낙심 하지 말지니 | 5분 설교: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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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1984.7.20 지권찰회
본문: 갈6:7-10
그런데 우리는 믿음생활을 하면서 주의할 것은 믿음생활을 해 나가면 반드시 피곤할 때가 온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낙심치 말찌니”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찌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아라. 왜? 우리가 피곤한 일이 닥치기 때문에 낙심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 가다가는 낙심할 만치 그런 피곤이 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자기가 행한 그것만 생각하고 내가 이렇게 행했으니까 참 많이 했다 이렇게 생각이 나져서 피곤한 마음이 생겨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 앞에서 사는 것은 주님이 우리 위해서 소유와 몸과 생명을 하나님이 다 우리 구원하기 위해서 바쳐 주신 그 은혜를 입은 거게 대해서 우리가 상대해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참 우리가 주를 위해서 사는 이 신앙생활 하는 것은 낙심할 만치 피곤이 옵니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는 일 신앙생활 하다 보면 참 피곤하고 낙심할 일이 있으나 낙심 안 하고 또 피곤치도 않고 그래야 상급도 있고 그래야 성공도 한다 했습니다.
피곤한 일을 자꾸 하는데 어떻게 피곤치도 안하고 낙심도 안 될 건가? ○○○씨, 왜 낙심하는 일을 하는데 낙심이 안 돼? 왜 피곤한 일을 하는데 피곤이 안 돼? 이러니까 피곤할 만한 일을 하고 참 낙심할 만한 그런 일을 하지마는 낙심도 하면 안 된다. 또 피곤해도 안 된다. 그러면 피곤해도 안 되는 거 일하지 말라 말입니까? 그 말은 주님이 날 구속하신 것을 생각하고, 그러니까 죽도록 충성하고도 주님이 나한테 하신 걸 생각하니까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주님이 나를 위해서 한 것만치 할까?’ 죽도록 해도 모자란다 그 말이오.
이러니까 그걸 생각하니 아이구, 주님은 이렇게 큰 걸 가지고 날 사랑해서 다 바쳤는데 나는 바쳐봤자 찌끄러기 같은 거 뭐 살대로 살고 제 욕심대로 다 살고 남은 찌끄러기 이까짓 거 주님에게 바치고-청년들도 보면 말이요, 어쩌든지 낮으로는 팽팽한데 밤에 자고 새벽에 나오면 씨룽씨룽 다 죽어 갑니다. 밤새도록 늦게까지 잠 안 자고 그래 놓으니까. 절제해야 됩니다, 절제해야 돼.
피곤할 만하고 낙심할 만한 그런 일을 했지마는 주님이 나 위해서 희생하신 거 그 사랑을 생각하니 아무리 해도 나는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피곤한 마음을 가질 수가 없어.
또 하나는 주를 위해서 하는 그것이 적은 수고를 하고 하나님 앞에 큰 대우 받을 것을 생각하니까, 대목장에 저거 집에 팔지 못하고 있던 물건 그날 팔게 되면 밥 먹을 줄도 모르고 피곤치도 안하고 기쁠 것입니다. 왜? 재고돼 가지고 다 썩혀 내버릴 걸 팔아서 돈을 만드니까 좋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것도 그런데 하물며 늙어 죽고 없어지고 썩어질 이것을 가지고 영원무궁 세계에 하나님 앞에 대우 받을 수 있는 만물이 좋아하고 만인간이 좋아할 수 있는 이런 참 가치 있는 영광스러운 일을 하는 것을 생각하니까 뭐 피곤이 하나도 없고 그만 하면서 넘어져도 피곤을 몰라. 그것이 바로 하는 것입니다.
하천풍언씨가 그 사람이 폐병을 앓아서 아주 폐가 나쁩니다. 나쁜데, 그저 밤으로는 빈민굴에 가 가지고 봉사하고 빈민굴들에 있는 그 가난한 사람들 전부 봉사하고 낮에는 또 길가 돌아다니면서 전도하고 이러다가 그만 쓰러져서 못 견뎌서 쓰러져서 피를 토하고 쓰러져서 그만 엎어져서 그만 죽은 거와 같이 됐다 말이오. 죽은 거같이 됐는데,
그래 매어다가서 병원에 가 가지고 이렇게 주사를 놓고 이래 가지고 조금 치료를 해서 ‘어쩌든지 이거 안정 안 하면 안 되니까 안정하십시오.’ ‘예.’ 해 놓고 나와 가지고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니까 안 전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또 안 전할 수 없어 또 나가서 전하는, 그 책에 보니까 그 사람이 세 번 길가에 쓰러져서 죽은 것을 다른 사람이 매어다가 병원에 입원을 시켰다고, 그래도 안 하고는 못 견뎌요.
주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에 그 사랑에 감격해서 우리는 그 깨달음의 느낌에서 피곤한줄 몰라야 되겠고, 또 그 일 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 것을 그것을 깨닫고 수지 계산을 맞춰 보니까 너무도 적은 것을 바쳐 가지고 큰 것을 받는 걸 생각하니까 뭐 어떻게 재미있고 수지 계산이 맞는 일인지 피곤한줄 모른다 말이오.
이 기독교 신앙생활은 이런 성격에서 신앙생활 해야 되지, 억지로 못 견뎌서 내가 큰일 했다 하고 앞선 자는 뒤 된다. 또 일찌거니 가서 일해 가지고 일 많이 한 사람은 뒤에 품삯을 받았다. ‘나는 이거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인데.’ 하는 사람은 후대를 받았습니다. 그게 뭐입니까? 자기가 주를 위해서 많이 했다는 일한 것이 눈에 보이는 사람은 헛일입니다. 교만한 자요. 암만 하고도 한 것이 없는 그 사람이라야 주님 앞에 참 올바른 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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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9-10 KRV – Bible.com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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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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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

갈라디아서 6.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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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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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9-10 – 대한성서공회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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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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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어 성경 Holy-Bible

데살로니가후서 3:13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번역비교].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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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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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 … – 동산교회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한자로 선 ( 善 )자를 풀이해 보면 양에게 풀을 먹이는 것입니다. 풀을 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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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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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6:1-10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 믿음의 싸움 / 한경직 목사

좋은 일을 하다가 맥이 풀리지 말라는 뜻입니다.『그리고 피곤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은 사실 낙심하지 아니하면 하는 그 뜻이 좀더 있겠습니다.『낙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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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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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 정필도목사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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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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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2020.1.5. 신년주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본문: 시편 147:12-20; 갈라디아서 6:1-1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5.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형제자매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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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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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갈라디아서 6:9-10 KRV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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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 6절-9절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오늘 우리가 본문으로 삼은 이 말씀에 대하여 어제 정리를 하려고 하였으나, 좀 더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아서 하루를 미루다 이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그 이유는 6절의 말씀에 대한 해석을 놓고 그동안 천편일율적(千篇一律的)으로 말씀사역자에 대한 물질적이고 재정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전임사역자에 대한 생계는 분명 같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해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런데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처럼 물질적이고 재정적인 것에 한정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사도는 6절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라고 한다. 여기서 “가르침을 받는 자”(κατηχούμενος)란 성도들을 말할 것이며, “가르치는 자”(κατηχοῦντι)란 목사 또는 교사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의문은 그 다음의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Κοινωνείτω…ἐν πᾶσιν ἀγαθοῖς)라는 문장이다. 통상적으로 그동안 여기서 말하는 “좋은 것”을 재정적인 지원, 즉 물질적인 후원을 전제로 한 것으로 본다. 그래서 이 당시 유대주의자들이 일부 신자들을 충동질하여 재정지원을 중단할 것을 요구한 것에 대하여 경계로 한 말이라 본다. 특히 유대주의자들의 예물은 정해진 법칙에 따라 마치 세금을 내듯이 하는 것이지만, 이와 달리 성도들이 자발적으로 연보를 한다는 것은 당시 매우 이례적이며 가히 유대주의자들이 볼 때 혁명적이라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여기서 “좋은 것”이란 통상적인 접근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사도가 이와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한 곳도 있기 때문이다(고전 9:7-17 참조).

그런데 “좋은 것”에 대하여 이 표현은 물질적인 보상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 문맥에서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가르침을 받는 자가 말씀 안에서 서로 교제하는 가운데 그 말씀으로부터 얻는 영적·도적적으로 훌륭한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여 복음을 설명한 곳도 있다는 것이다(롬 10:5. 참고 히 9:11). 생각건대 6절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우리 성경에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라고 할 때 여기서 말씀을 목적어로 번역하고 있다. 그런데 본문은 τὸν λόγον이라 적고 있는데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 “in the word”와 같은 의미에 가깝다. NIV 성경은 그래서 6절을 “Anyone who receives instruction in the word must share all good things with his instructor.”라고 번역하고 있다. 이것을 그대로 번역을 하면, “말씀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사람을 가르치는 사람과 반드시 좋은 것을 나눠야 한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앞의 “나눈다”는 말을 Κοινωνείτω로 적고 있어 서로 좋은 물건들을 나눈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여기 Κοινωνείτω는 κοινωνία와 같은 의미도 내포하고 있어 여기서의 나눔이 꼭 물질적인 것에 한정되기보다는 말씀 안에서 교제하는 의미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통상적인 전자의 해석보다는 후자의 해석을 지지하고자 한다.

이제 6절을 위와 같이 해석을 하면, 7절은 또한 같은 맥락에서 “사람이 심어야 할 것”은 통상적인 전자의 해석에 따르면 사역자에 대한 자발적이며 좋은 마음으로 물질적인 협력을 하는 것이 될 것이며, 후자의 해석에 따르면 도덕적이며 영적인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농사의 법칙에 따른 것으로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물질적인 후원을 통하여 협력을 한 자에게는 그와 같은 것을 거두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것을 서로 나누면 그와 같은 것을 거두게 된다는 원리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통상적인 해석이 아닌 후자를 택하였기 때문에, 말씀 안에서 거룩을 위해 힘쓰며 나눈 자들은 성령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이 과정에 하나님을 “업신여김”(μυκτηρίζεται, 조롱, 비웃다, 흉내 내다)을 당하시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 업신여김을 이전 성경은 “만홀(漫忽)히 여김을 받다”라고 되어 있었다. 이것은 곧 경건을 가장한 위선과 외식적인 삶이 원인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는 이와 같은 “스스로 속이는”(πλανᾶσθε) 일은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까지 두 견해를 비교하면서 왔는데, 이미 6절에서 본 것처럼 필자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바로 이와 같은 접근이 문맥적으로 더욱 상응적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여기 8절에서 보는 것 때문이다. 육체를 위하여 심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위해 심는 것, 즉 거룩한 주님의 백성으로서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성령을 따라 행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육체를 위하여 썩어질(φθοράν)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는”(ἐκ τοῦ Πνεύματος θερίσει ζωὴν αἰώνιον) 것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이처럼 성령의 역사를 따라 성령의 사람으로 영생을 소망하며 살아가야 할 자들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발을 들이고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여러 가지 세상적인 가치관과 부딪히는 일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심을 해서는 안 된다. 사도 시대 역시 같은 상황이었음을 이 말씀을 통해 짐작이 간다. 당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복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한 것이 못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여러 차례 본 것과 같이 유대주의자들은 성도들을 현혹케 하고, 핍박을 가하고 있다는 시대상황에서 볼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사도가 추수의 원리를 말하듯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καιρῷ γὰρ ἰδίῳ, θερίσομεν)고 했으니, 여기에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소망과 방향성이 분명히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갈라디아 교회의 성도들만의 문제이겠는가? 이는 우리 시대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 더 살필 것은 “때”라는 단어이다. 여기서의 “때”는 καιρῷ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우리가 “때가 차매”(τὸ πλήρωμα τοῦ χρόνου)라고 할 때의 “때”라는 χρόνου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여기서 말하는 “때”라는 단어는 χρόνου와 같은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때가 아니라 “의미적인 시간”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때는 종말과 심판, 그래서 영원히 지속되는 생명의 때를 말할 수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사람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삶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래서 주님께서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던 것이다.(이하 계속/ 구모영씀)

[갈라디아서 6:9 ]

제 6 장

짐을 서로 지라

1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너희가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또는 무거운 짐을

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5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1 내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큰 글자로 쓴 것을 보라

12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13 할례를 받은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16 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 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갈6:9~10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윽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한자로 선 ( 善 )자를 풀이해 보면 양에게 풀을 먹이는 것입니다.

풀을 먹은 양은 절대로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습니다.

그저 조용히 풀을 뜯고 즐거워할 따름이지요.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마음 속에 충만함을 얻는 것이 주님이 가르켜 주신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선을 행하며 메아리가 없다고 낙심하면 안 되겠습니다.

믿음의 가정은 주님께서 목자 되시는 양들이니 특별히 선을 베풀기를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자유의 대헌장이라 부를 만큼 율법에 매어 선을 행하고 외식하며 그 메아리애 목말라 하는 것에 대하여 경계합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와 지되 그 자유가 육체의 그늘에 들어가지 않도록 힘써서 서로 사랑의 종노릇을 하라고 말씀하시지요.

양이 풀을 뜯는 모습을 보며 성령이 충만한 기쁨을 맛 보면 될 일입니다.

악( 惡)을 한자로 풀이해 보면 선 다음에 따르는 다른 마음입니다.

버금 아에 마음심이니

분명 선에 따르는 다른 마음이라고 풀이할 수 있겠지요.

이 마음은 메아리를 기대하는 마음이고 낙심하고 실족하는 마음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오늘도 낙심하지 말며 선하고 착한 마음으로 하루 살아가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2015-10-23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admin 2015.11.11 14:16

1023 [오늘의 말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성구

형제들아 너희는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살후 3:13)

묵상과 적용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라고 권면했습니다. 이 말은 과격하게 들릴 수도 있으나, 평소에 열심히 일을 하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사람들은 이 말씀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게으름을 부리던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말일 것입니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깊이 생각하면서 자숙하면 좋겠는데, 속이 부글부글 끓으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불평했습니다. 교회에는 늘 이렇게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 말씀에 이어서 다음과 같이 몇 가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도 바울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13)”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믿음의 사람들은 낙심할 줄 몰라야 합니다. 사람들이 낙심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또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높이 들어 쓰시며,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선을 행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 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때가 오면 반드시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둘째, 사도 바울은 “누가 이 편지에 한 우리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지목하여 사귀지 말고 그로 하여금 부끄럽게 하라(14)”고 말했습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교역자들은 속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에 보면,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쓸데없는 소리나 진리에 어긋나는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비록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종이 하라고 하면 복종해야 합니다. 물론 먼저 목회자들이 존경받은 만한 덕성을 갖춰야 되겠지만, 사실 부족한 주의 종의 말이라도 순종하면 목회자에게 격려가 되어 목회를 즐겁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가 바로 부흥되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않으면 목회자들이 근심하므로 교회에 유익하지 않습니다.

셋째, 사도 바울은 “그러나 원수와 같이 생각하지 말고 형제 같이 권면하라(15)”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들을 회개시키는 데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합니다. 그런데 한 번의 실수로 인해 그 사람을 원수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인자한 마음으로 서로 서로 용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에게 권면하듯이 사랑으로 권면해야 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사람은 이렇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께서 친히 때마다 일마다 너희에게 평강을 주시고 주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16)”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무엇보다 원한 것은 평강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평강의 주님께서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강이 있기를 기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보다 더 귀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어떤 형편에 처해 있어도 마음에 평강이 있는 사람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평강이 있을 때, 영적으로 가장 건강할 때입니다. 평강이 있을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선을 행하도록 저희를 권고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가 선한 일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시고, 또한 낙심하지 않게 인도하옵소서. 아멘

출처 : 20080928 주일예배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라, 데살로니가후서 3:13~18]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2020.1.5. 신년주일)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본문: 시편 147:12-20; 갈라디아서 6:1-10

설교: 홍정호 목사 (2020.1.5. 성탄 후 제2주, 신년주일)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은 각각 자기 몫의 짐을 져야 합니다.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과 모든 좋은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자기 육체에다 심는 사람은 육체에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에다 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생을 거둘 것입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

1.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새해 첫 주일 아침에 교우 여러분과 가정 가운데 함께 하시길 빕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또 한 해를, 또 하루의 아침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처음 신학 공부를 할 무렵 성서비평을 배우면서 ‘기적은 없다’는 사실을 접하며 충격을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공부를 그만뒀더라면 신자의 길을 떠나고 말았을 텐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진실에 눈 떴습니다. 그것은,‘기적이 없는 게 아니라, 일상이 기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걷게 된 것(마 14:29)도 기적이지만, 그보다 더 큰 기적은 저와 여러분이 각자의 발로 땅을 딛고 오늘 여기에 서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리신 일(눅 7:11-17)만 기적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한 순간도 쉼 없이 숨 쉬고 있다는 이 사실이야말로 기적입니다. 그런 기적이 한두 번 사건에 그치지 않고, 작년 한 해 뿐만 아니라, 여러분과 저의 일평생에 이어져 오늘 새해 신년주일이 되었다는 이 사실만큼 기적적인 일이 또 있을까요?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눈 뜬 이들은 ‘오늘’이야말로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 은총의 선물이며, 더 없이 큰 기적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2.

일평생 그런 기적을 체험하며 산 사람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사도들 가운데서 가장 작은 사도입니다. 나는 사도라고 불릴 만한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되었습니다. (중략) 내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 15:9-10) 바울은 회심하기 전 교회를 박해하는 일에 앞장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난 그는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회심 이후 바울의 삶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복음을 유대인에게 한정된 약속의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의 기쁜 소식으로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아니었지만,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과도 같은 변화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랑할 만한 이력의 소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아 스스로를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큰 인물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그는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고전 15:10a) 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심지어 그의 남다른 수고와 열정에 대한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앞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고전 15:10c)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이 많은 시련 가운데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감당하고 귀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비결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나는 주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고백하고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바울의 삶이었습니다.

제 딸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집에서 야구 놀이를 했습니다. 제가 투수를 하고, 큰 딸이 포수를 하고, 작은 딸이 타자를 했는데, 이 작은 딸이 위대한 4번 타자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공을 던지는 족족 잘 맞춰서 치는 겁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희가 다 칭찬을 하니까 재미있었는지 자꾸 하자고 해서 여름내 야구 놀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제 딸이 잘 친 걸까요, 제가 잘 던진 걸까요? 공을 다 받아치는 아이가 훌륭한 걸까요, 아니면 그렇게 하도록 배려하고 격려하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은 어른이 훌륭한 걸까요? 제가 훌륭하다는 얘기를 들으려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랑하시는 자녀인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를 말씀드리기 위함입니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때에,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하자면, ‘던져’ 주시는 분이 은혜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여러분에게 드립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인생에서 거둔 많은 보람의 결실에도 불구하고,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3.

바울에게 역경과 도전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바울은 인간적으로 볼 때 참으로 어려운 갈등 상황에 끊임없이 직면했습니다. 오늘 갈라디아서의 말씀 또한 갈라디아 지역 교회의 갈등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인 우리들은 ‘초대교회’를 교회의 원형이자 모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하면 오늘날 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 말입니다. 무슨 일이든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초심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 중요한 과제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 교회의 초심이었다는 점에서 원형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초대교회에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초대교회 역시 오늘날 우리 교회들이 겪는 문제를 대부분 겪는, 갈등과 대립의 장소였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초대교회의 상황을 너무 낭만화하거나 부분적인 진실을 대면하는 데 그치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선교를 위한 모금과 직접 선교 활동을 하는 것 이외의 자신의 사역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동체 간의 갈등과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조율하고, 이를 조화롭게 해결하는 데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갈등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갈등은 대개 자신을 공동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갈등의 명분으로 내세운 주장들과 달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갈등을 뿌리 깊게 만드는 근본 요인에 해당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열심 있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다른 이들보다 헌신적입니다. 교회 공동체가 그만큼 세워지는 데 있어 그들의 노력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런데 왜 문제가 일어나는 걸까요? 그들이 주님을 위한 헌신에서 벗어나 공동체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각자에게 주어진 직분과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위한 헌신과 열정에 대한 지나친 기대보상 심리로 인해 공동체 내부의 균형을 깨뜨리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의 편지는 이런 공동체를 향해 다시금 주님의 화해와 평화, 사랑과 자비의 말씀을 전하고, 교회 됨의 본질로 돌아갈 것을 가르치는 목회적 권면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4.

오늘 갈라디아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말씀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바울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하고 권면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 하나를 갈라디아 교회에 전달합니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에,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합시다. 특히 믿음의 식구들에게는 더욱 그렇게 합시다.”(갈 6:9-10)

낙심은 누가 합니까? 어떤 일에 관심이 적은 사람은 낙심할 일도 적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잘 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낙심할 일이 생깁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선한 일을 하려고 애쓰는 이들이 낙심할 일도 더 많습니다. ‘이건 이렇게 되어야 한다’ 생각이 더 많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일이 ‘악한’ 일이 아니라, ‘선한’ 일인 경우에는 그 일이 자신의 뜻대로 성취되지 않는 데 대한 좌절감이 클 수밖에 없겠습니다. 그래서 선한 일에 힘쓰는 사람일수록, 역설적이지만, 낙심할 일도 많아지는 것입니다.

낙심이 무엇인가요? 마음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본래 있어야 할 그 자리에서 떨어져 깨지는 것이 낙심입니다. 신자인 우리의 마음이 본래 있어야 할 그 자리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우리의 마음도 있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서 마음이 떨어져 깨지면 낙심한 상태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장인이 빚어 만든 귀한 그릇이라도 떨어져 깨지는 순간 흉기가 됩니다. 떨어져 깨진 그릇은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고 다른 이에게 상처를 입히는 도구가 됩니다. 바울의 사역은 그렇게 떨어져 깨진 마음들, 주님의 마음으로부터 떨어져 깨진 공동체를 향해 본래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본질로 돌아갈 것을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동체의 누구누구가 아니라 주님이 빛나시고,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교회로 다시금 세워져 가도록 권면하는 것이 바울의 사역이었습니다. 마음이 떨어져 깨진 이들과 더불어 주님의 일을 이룬다는 것이 인간적으로는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그 일을 자신에게 맡기신 주님의 일로 여기며, 날마다 새롭게 주시는 은총에 의지하여, 낙심을 이기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5.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올 해 저는 여러분에게 사도 바울의 권면을 파송의 말씀을 대신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선한 일에 힘쓸 때 가장 아름답고 귀한 모습이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선한 일을 통해 빛나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시 주님이 맡기신 선한 일에 힘쓸 때 가장 교회다운 모습이 됩니다.

그러나 선한 일에 힘쓰다 보면 낙심할 일도 그만큼 많이 있을 줄 압니다. 특별히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 어떤 성취를 거두고자 애쓰는 일들,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관계일수록 낙심의 도전에 더 많이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는 바울의 권면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의 일은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맡기신 일에 충성하며 선을 행하면 그뿐입니다. 결과는 주님께 맡깁시다. 씨를 뿌리면서 나지 아니할까 염려하지 않고, 믿음으로 뿌리고, 믿음으로 거둡시다.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아니하며, 때가 이를 때에 기쁨의 열매를 거두는 저와 여러분의 올 한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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